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스마르크급 전함 (문단 편집) === 독일 제국 해군청 시절 === [[제1차 세계 대전]]까지 [[독일 제국]]의 함선 설계를 담당했던 조직은 독일 제국 정부의 해군부인 [[독일 제국군 #s-3.5|제국 해군청(Reichsmarineamt)]]으로, RMA라는 약자로 불린다. 이 조직은 선진적인 연구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독일 [[대양함대]]를 영국 왕립해군에 대항할만한 성능으로 올려놓았다. *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원수가 직접 보호하고 큰 권한을 주는 RMA는 외부의 부당한 간섭을 대부분 차단가능했다. 설계의 향상을 위해 현장의 경험을 청취하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모든 설계 방향성은 RMA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 RMA가 목표로 삼을 주요 목적이 이미 분명하게 결정되어 있었다. '''대영제국의 함대에 맞설 수 있는 함선을 설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고 다량의 건조를 통해 피드백도 RMA로 빠르게 들어온다. * RMA 내부는 그냥 제복을 입은 민간인같은 조직으로, 내부 구성원은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써 서로를 존중했다. 그리고 실제적인 영향력은 계급의 차이가 아니라 성과의 차이로 결정되었다. * RMA에 신규 설계자로 들어오려면 길고 험한 길을 거쳐야 했다. 전문고등학교 졸업후 2년간 연습을 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학 졸업후 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이제야 시작에 들어서게 된다. 그 다음에는 독일 제국 해군에 입대해서 4년을 보내야 하는데 그 중 1년은 장교 후보자 자격으로 승선해야 하며 군대를 다녀왔어도 IM 조선소에서 3년을 더 근무한 후 지금까지의 현장 경험으로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를 알아보는 엄격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그리고 이 시험을 통과해도 이후 전체 과정의 중반에 진입하며 보조 기술자로 3년을 더 근무한 후에야 가장 중요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이 시험에는 6주간의 선박 설계 프로젝트가 포함되었으며 시험과목중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냥 완전탈락이었다. 시험을 통과해야 비로소 견습 딱지를 떼고 정식 공무원이 되었고 몇 년간의 기간을 지나서 경험이 풍부하면서도 혁신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 그제서야 RMA에 설계자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여기까지 도달하면 '''명함만 신규 설계자이고 실제로는 업계 중견급 설계자가 된다'''. * 신규 설계자가 들어가는 설계팀은 경험이 풍부한 수석 설계자가 이끌고 경력 높고 실력 좋은 선배 설계자가 직접 신규 설계자를 가르치는 거대한 팀이었다. 여기서 군함을 설계할 때 따라야 할 기본 설계 이념을 배우고 이를 응용하게 된다. * RMA 내부에는 설계팀이 몇 개 안되며 서로 보완해주는 관계였다. 쓸데없는 과잉한 경쟁은 피하며 팀의 성과가 개인의 성과보다 우선시된다. 그렇다고 개인의 성과를 무시하는게 아니라 개인의 성과가 팀의 성공에 영향을 주면 해당 개인은 더 발언권이 세지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구조다. 종합해보면 당시 시대의 한계성을 감안할 경우 그 당시 설계자에게 있어서는 '''꿈의 조직'''이나 마찬가지였다. 설령 설계자로 들어와서 눈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못내놓아도 팀 내에서 다른 성과를 내면 모두가 인정해주며, 만일 신입 설계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내서 그게 팀의 성공에 기여했다면 직급은 최하위라고 해도 영향력은 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실무 경험과 현장 경험을 두루 갖춘 팀장과 선배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나 신기술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하므로 당장 전쟁에서 쓸만한 신뢰성을 가지면서도 성능이 좋은 함선을 설계할 수 있었다. 다만 달리 살펴보자면 이는 일개 정부부서에 대한 정당한 제지가 거의 불가능했다는 말도 된다. 식민제국 건설에 대한 국민적 열망, 그리고 황제와 티르피츠 원수의 보호는 독일 제국 해군의 대대적인 확장과 해군청의 설계자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러나 이는 독일 국가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막심한 재정적 출혈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건함 예산이 너무 막대한 나머지 재정 부채가 심각하게 누적되었고, 독일 [[제국의회]]는 해군청이 청구하는 영수증에 찍히는 금액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에 항상 진절머리를 냈다. 독일 국가예산의 거의 40%가량이 해군에 쓰였을 정도였는데, 당연하게도 이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수치가 전혀 아니었다. 결국 [[독일 사민당]]이 집권하고 해군 예산을 대폭 삭감했고, 곧 전쟁이 벌어지면서 해군청의 행복한 나날은 종말을 고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